아이를 낳고,

이제 그 아이도 태어난 지 100일이 훌쩍 지났다.

3개월 넘게 방치해둔 블로그에 오랜만에 접속하니

먼지가 가득한 집에 들어온 기분이다.

다시 해봐야지.

지금도 이렇게 바쁜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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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에 아침에 비교적 일찍 일어났다가 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했다는 기사를 1시간 가량 읽다가 다시 잠들었다.

꿈에 대통령과 여사님께서 나오셨다.

나는 보디가드였던 것 같은데, 대통령을 내가 직접 어깨를 감싸 피신시키기도 하고 참 바빴다.

어떨 때는 여사님에게 "뱃속 아가의 태동이 심한데 여사님이 아이를 가지셨을 때도 이러셨나요?" 묻고

여사님께서 내 어깨를 다독이며 다 잘 될 거라고 응원도 해주신 걸로 봐서는 꿈이 참 산만했다.

꿈은 순식간에 깼다.

약속이 있었는데 늦을까봐 꿈이 진행되는 도중에 확 눈을 떴다.

11시였다.

깨자마자 이건 로또를 사야 하는 꿈이라고 생각하며 적어도 2등이나 3등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수동 하나에 자동 4개를 하려고 마음 먹었다.

수동의 숫자 6개는 두 분의 생년월일로 하기로 했다.

문제는 53과 54가 로또에는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자리를 바꿔서 35와 45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토요일, 결과적으로 5등 2개가 됐다.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사람은 30개의 숫자 중에 하나도 안 맞는다는데 맞기는 꽤나 맞았다.

수동에서 하나, 자동에서 하나가 됐다.

3등이라도 될 줄 알았건만 약간은 실망했지만 본전은 했으니 다행이라고, 요행을 바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그건 로또 꿈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순산할 수 있다는 좋은 징조로 생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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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산 로또.

대선 직후 꿈에서 이니를 만나고

뒤늦게 로또를 샀다.

숫자는 짹짹이와 관련된 걸로,

당당하게 수동ㅋㅋ

다섯 번째 거는 이니랑 관련된 수로..


1등 숫자 보니까 뭔가 아깝구만..

첫 로또에 5등 네 개나 된 거 신기신기!

이니 꿈 후에 바로 샀으면 1등이었을라나?ㅠㅠ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밥값하는 짹짹이ㅋㅋㅋㅋ


ps. 서민 탈출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기대감으로 로또를 사는 거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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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나다>


그 사이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안고 두 차례 광화문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깨달았다. 생리 예정일이 한참을 지나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사왔다. 결혼기념일에 검사를 하면 의미 있을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그러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갔다. 전과 다르게 소변이 검사지를 지나자마자 진한 두 줄이 떴다. 차분하게 며칠 후에 다시 검사했다. 더 진한 두 줄이 떴다. 이번에는 분명 임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호들갑 떨다가 화학적 유산으로 울었던 기억 때문이다. 테스트도 일부러 두 번을 했고 거기서 또 이틀 지나 병원에 갔다. 생리 예정일이 2주 지난 때를 기다렸다. 정말 임신이라면 6주 정도 됐을 것이다. 정말 임신이라면 아기집을 보거나 운이 좋다면 심장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일찍 가서 아무 것도 못 보고 마음 졸이는 것보다 기다린 후 정확한 결과를 보기를 원했다. 확실할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임신이 맞을 거라며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아기집이 보인다고 했다. 심장소리를 들려주셨다. 쿵쾅쿵쾅 힘차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대박! 대박!”만 외쳤다. 남편도 놀랐는지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첫 초음파 사진과 함께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산모수첩을 받았다. 몇 년 동안 간직했던 ‘짹짹이’라는 이름을 뱃속 아이에게 붙여줬다.



<아이에게 배운 것>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병원에 가 몇 백만 원을 들여도 생기지 않던 아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까지 그만둔 후에야 갑자기 우리를 찾아왔다. 사실 그동안 병원비로 나간 5백만 원(정부지원금 제외. 실지출액)에 가까운 돈을 생각하면 아깝다. 왜 하필 나냐고, 나는 이렇게 젊고 건강한데 왜 내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느냐고, 죄인이 된 것처럼 우울하게, 내 마음을 망가뜨려가며 벽을 쌓고 울었던 시간들이 속상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들인 돈과 시간은 아이를 갖기 위한 수업료였고, 나를 위한 수련이었다. 체외수정 첫 시도 때 바로 성공했다면 ‘역시 나야.’하며 오만했을 것이다. 아이의 소중함을 지금처럼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것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건강한 아이가 우리를 찾아오기만을 바랐던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이제는 부모 될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은 건지 아이가 생겼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도 자궁에 배아를 붙일 수는 없었다. 그 어려운 일을 우리 힘으로 해냈다.


사실 지금도 안심되지 않는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내 눈 앞에 있어야 조금 안심할 수 있을까. 갑자기 심장이 멈추면 어떡하지, 손가락이 6개면 어떡하지, 예정일보다 일찍 나오면 어떡하지, 계속 걱정했다. 이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산해보면 남편 일을 돕기 위해 야외 행사에 나갔을 때도, 제주도에 갔을 때도, 촛불집회에 나갔을 때도 짹짹이는 이미 나와 함께였다. 내가 뭘 하든 간에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길 바라며 묵묵히 자신의 몸을 키우고 있었다. 건강한 짹짹이 덕분에 나는 입덧도 거의 없었고, 9개월이 된 지금까지 몸이 부은 적도 없으며, 지금까지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고 있다.


세상에 많고 많은 부모들 중 가진 것 없는 우리를 찾아온 아이에게 정말 고맙다. 몇 주 전에는 울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엄마는 나한테 좋은 것도 못 해줄 거면서 왜 나를 낳았어?”라고 원망할까봐 겁났다. 다른 부모들처럼 풍족하게는 못 해줘도 아이를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을 항상 생각하며 사랑으로 보듬어주며 아이가 올바른 생각을 갖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본을 보이는 멋진 부모가 되고 싶다. 태어나기 전부터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깨닫게 하는 짹짹이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다.



<또 다른 나에게>


통계에 따르면 가임기 부부 7쌍 중 1쌍이 난임이라고 한다. 난임은 1년 간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난임병원에 다니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가 이미 있다고 난임에서 완전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누구나 난임이 내 일이 될 수 있다.


남편의 지인 중에는 열 번이 넘는 시도 끝에 아이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아이를 임신하면 다행이다. 난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연들이 정말 많다. 그들이 들인 돈과 시간, 노력은 가늠할 수 없으며 난 그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감히 꺼낼 수 없다. 나는 고생한 것도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의 주변에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난임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우선 기혼자에게는 “아이 언제 가질 계획인가요?”라고 묻지 말자. 관심 표현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아이를 원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그 사람이 전과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까칠하거나 우울해하더라도 이상하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먼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자.(“누가 문제야? 당신이야, 남편이야?”라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여기 없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이 말을 직접, 한 자리에서 한 사람에게 두 번이나 들었다.) 위로해줘도 좋지만 위로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아이는 언젠가는 꼭 생긴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남편이랑 놀다보면 임신할 거야.”라는 지금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은 신기하게도 정말 맞는 말이다. 나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우리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아이가 찾아온다. 현명한 우리 몸은 당신을 위해 건강하고 좋은 유전자를 고르고 있는 중이다. 아이는 당신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다.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은 절대 당신 잘못이 아니다. 힘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곧 찾아올 좋은 날만 떠올렸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힘든 시기를 함께한 남편에게 정말 고맙다. 내가 울 때마다 짜증낼 때마다 받아주고, 내가 힘내서 걸어갈 수 있게 응원해줘서 짹짹이가 우리를 찾아온 것 같다.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행운을 가져 정말 행복하다. 7월을 기다린다.   끝.

<두 번째 실패>


전화로 실패를 들은 당일, 뭘 하고 싶은지 묻는 남편에게 ‘유럽 여행’을 말했으나 유럽 대신 자신이 도쿄로 출장을 갈 때 함께 가는 것이 어떤지 제안했다. 언제 또 국제선을 타겠냐는 생각에 바로 수락했다. 하루에 2만보 가까이 걷고 먹는 맥주는 아주 꿀맛이었다. 집에 와서야 깨달았다. 생리 예정일이 지나있었다.


이런 적이 처음이 아니기에 며칠 더 기다렸다가 임신 테스트기를 뜯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내 눈에 두 줄이 희미하게 보였다. 산부인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이를 말하니 아마 임신이 맞을 거라며,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아기집이 보이지 않자 선생님께서는 착상이 늦으면 그럴 수 있다며 피 검사를 제안했고 결과를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100이 넘어야 임신인 수치는 28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며칠 뒤 다시 피 검사를 하자고 했고 나는 임신이지만 임신이 아닌, 며칠을 보냈다. 다시 피 검사를 했지만 내 몸을 통해 나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실패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이 쏟아졌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날 유난히도 하늘이 맑았다.


정확한 명칭으로는 화학적 유산이었다. 자리를 잡으려다가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자궁에 무리가 가진 않았겠지만 건강을 위해 선생님께서는 석 달 간 쉬는 것을 권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화학적 유산의 원인은 배아의 염색체 이상 등의 문제로 발생한다고 한다. 만약 심장소리를 듣고 아이를 잃었다면 더 슬펐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의학적 도움 없이 우리의 힘만으로도 임신이 가능하겠다는 희망을 봤다.



<세 번째 실패>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놀았다.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가 연속으로 개봉해 무대인사도 여러 번 가고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열심히 덕질을 했다. 남편이랑 맥주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잠시 머릿속에서 임신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동시에 난임 전문 한의사가 쓴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 무렵 즈음, 높게 올렸던 마음의 벽을 해체했다. 직장 동료이자 임산부 선배인 그들과 비로소 마음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나로 인해 불편했을 그들을 위해 그동안 요동쳤던 내 마음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그동안 힘들었겠다며 잘 될 거라고 말해줬다.


그로부터 4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두 가지 큰 결정을 내렸다. 첫 번째는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고, 두 번째는 다시 병원에 가기로 한 것이다.


남은 휴가를 쪼개면 병원에 다니는 것은 문제없었지만 임신에 집중하고 싶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온라인에서 임신을 위해 일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보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난임으로 고생하다 임신을 한 지인의 ‘아이를 가지려면 하나쯤은 포기를 해야 하더라.’는 말이 뒤늦게 이해됐기 때문이다. 5년 정도 일했으니 쉴 때도 됐다 생각했다. 남은 휴가를 붙여서 9월 말 퇴사하는 걸로 정리했다.


9월 초, 전에 갔던 병원의 다른 지점을 찾았다. 거리상의 문제도 있었고 소위 용하다는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다. 운 좋게도 내게는 냉동 보관된 배아가 있었다. 냉동은 시술 과정이 간편한데다 내 몸에 무리가 덜 가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신선보다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매일 배에 주사를 놓을 필요 없이 일정한 시간, 일정 기간 동안 약을 먹고 배아를 이식하면 끝이었다.


느낌이 좋았다. 냉동 배아는 바로 채취 해 수정한 배아보다 착상될 확률이 높다. 이번에는 왠지 성공할 것 같았다. 이식 후 다른 느낌의 며칠을 보내고 피 검사를 했다. 날 혼자 두기 걱정되셨는지 시어머니는 병원에서 전화가 올 때까지 곁에 계셨다. “수치 0.5입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좋은 느낌과는 반대로 너무 터무니없는 수치에 헛웃음만 나왔다. 적어도 50은 나올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꾹꾹 참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꺼이꺼이 울었다. 건강하고 예쁜 아이가 언젠가는 꼭 올 거라고 속으로 외쳤다. 언젠가는 꼭.


오늘까지만 울고 앞으로는 울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밖으로 나갔다. 매일 1시간 이상을 걸었다. 임신에 집착하지 않기로, 당분간은 병원에 가지 않기로 했다. 병원에 갈 돈을 우리 자신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냉장고를 견과류와 베리류 등으로 채웠고 영양제도 열심히 먹었다.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제주도도 다녀왔다. 이렇게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아이가 우리를 찾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날을 꼽으라면 작년이다. 동시에 작년은 가장 밝았던 날이 있던 해이기도 하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암흑을 빠져나오자 그 어느 때보다 밝고 따스한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을 하면, TV에서 보는 것처럼, 내 주변 사람들처럼, 으레 듣는 이야기처럼 아이가 어려움 없이 바로 생기는 줄 알았다. 우리 부부는 내가 경력을 쌓은 후 아이를 갖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미리 지어둔 태명은 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난임. 상상조차 못한 단어가 내게 찾아왔고 내 모든 것을 흔들어놓았다. 어떤 이에게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된 일이 내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느낀 것을 정리하며 50일 후 찾아올 우리의 아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첫 번째 실패>


난임으로 유명한 강남의 C병원을 찾았다. 처음 방문할 때는 원인이라도 알자는 마음이 컸다.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남편은 약을 처방받았고 우선은 더 노력해보기로 했다. 아직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왠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실패를 번갈아 느끼고 있던 어느 날, 직장 동료 둘의 임신 소식을 들었다. 당장 가서 축하해줘야 당연한 도리였겠지만 그때의 나는 참 어리고 못됐다. 물론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보다 먼저 결혼한 나에게 다른 동료들이 “애 언제 가질 거야?”라고 물을까봐 두려웠다. 숨고 싶었다. 그때부터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높은 마음의 벽을 쌓았다.


처음 병원에 간 지 반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에게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나도 그들처럼 꼭 임산부가 되리라는 결심으로 시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건강은 훨씬 좋아졌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인공수정(정자를 자궁 안으로 밀어 보내는 것)이 아닌 체외수정(채취한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킨 수정란을 자궁 안에 이식하는 것. 흔히 시험관이라고 함)을 제안했다. 돈이 더 들고 과정이 힘들더라도 확률이 높은 체외수정을 택하고 일정을 잡았다.


2016년 3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임신을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사실 내가 겪고 있는 일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처음에는 내가 문제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이 건은 최소 임신을 생각해본 사람만이 내 감정에 공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는 난임에 고민했던 사람만이 날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쉽게 말할 수 없었다.


회사 동료 몇에게는 내 사정을 설명했다. 상사에게는 휴가원에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고, 또래의 동료들에게는 가능하다면 혹시나 있을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다. ‘하필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잘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내 스스로를 응원했다. 결심은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때로는 사내에서 임산부를 배려하는 모습에, 때로는 누군가의 임신 소식을 듣고는, 임신에 관련된 작은 무언가만 있어도 내 결심은 어찌나 그렇게 약한지 금세 무너져 내렸다. 한번은 동료와 함께 퇴근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진 적이 있었다. 그는 근처 카페에 나를 데려가 등을 토닥여주며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줬다. 다른 이는 자궁 건강에 관한 책을 빌려주며 내 행운을 빌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따스하게 나를 위로했다.


과배란을 유도하기 위해 열흘 정도 출근 전 매일 아침 배에 주사를 놨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 슈퍼 히어로가 되기 위해 주사를 맞는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거의 이틀 간격으로 병원에 가 검진을 받으며 ‘때’를 기다렸다.


체외수정 중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난자 채취를 한 후이다. 채취 당일 마취가 풀리면서 자궁을 누군가가 잡아 뜯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다음날은 가스가 찬 것처럼 배가 빵빵 하더니 퇴근길 지하철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구토가 올라와 지하철에서 내렸다. 남편을 만나 겨우 집에 왔고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낸 후에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항생제가 부작용을 일으킨 것 같았다. 며칠을 고생했다.


수정란 이식 후 착상은 신의 뜻이었다. 되는 사람은 평소처럼 일해도 되고, 평소와 달리 누워만 있어도 된다. 휴가를 내고 며칠 쉬기로 했다. 계속 녀석이 어디 있을지 가늠했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됐다 안 됐다 내 마음은 오락가락 했다. 피 검사 당일, 결과를 몇 시간 뒤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합격을 기대하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초조하게 남편과 드라이브 겸 바깥으로 나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가 국밥 한 술을 뜨려는 찰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피 검사 수치 0.3으로 임신이 아닙니다.” 전화를 끊고 눈물이 마구 쏟아졌고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뭘 먹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무균실에서 갓 나온 듯한, 결점이 없는, 100% 완벽한 이를 우리는 바라는 것인가.

너무나도 명확한 타깃팅을 한 사람에게 너무나도 계획대로 당해버렸다.

그렇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의 말도 이해는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로 시작해

차라리 이럴 바에야 모두 다 부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마쳤다.

눈물이 났다.

'당장' 내 삶에 아주 직접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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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선후보 토론회를 보려고 TV를 켰는데 보는 중에 알았다.

내가 채널을 잘못 눌렀네.

5명 후보가 토론을 해야 하는데 '대통령' 한 명을 두고 청문회를 하더라고..

뒤늦게 알았습니다.

제가 청문회를 보고 있었군요. 껄껄.

화가 나서 TV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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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 공약에 부모들 부글부글 (2017.04.11. 서울경제)


본 기사에 덧붙여 정리하면 안 후보와 국민의당은 '병설 유치원 신설 자제, 사립 유치원 독립 운영 보장'가 오보였다고 밝혔다. 원래는 '단설 유치원 신설 자제, 사립 유치원 독립 운영 보장'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부모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렇다. 병설과 단설 모두 국공립유치원이며, 병설보다는 단설을 학부모들이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결국 어쨌든 간에 국공립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설립을 자제하겠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그 대상은 병설보다 좋은 단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유치원 대기자 명단에 올리고, 당첨이 된 부모는 기쁨에 울고, 탈락이 된 부모는 걱정에 우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불난 집에 제대로 기름을 부었다. (+이 공약을 발표한 곳은 사립 유치원 교육자들이 모인 자리였고, 국공립 신설을 자제한다고 하니 그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는 별개로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고 아이를 낳으라고 얘기하는 정부의 정책에 참 황당하다. 돈 없는 사람만 슬픈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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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신은 굉장히 고고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인 척,

페이스북은 본인의 가장 좋은 모습만 올리는 거라지만 사기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해도 역시 갔구나..

가까이서 보면 누구보다 별로인 그 사람.

그냥 이 나라를 위해 가만히 계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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