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나다>
그 사이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건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안고 두 차례 광화문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깨달았다. 생리 예정일이 한참을 지나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사왔다. 결혼기념일에 검사를 하면 의미 있을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그러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갔다. 전과 다르게 소변이 검사지를 지나자마자 진한 두 줄이 떴다. 차분하게 며칠 후에 다시 검사했다. 더 진한 두 줄이 떴다. 이번에는 분명 임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호들갑 떨다가 화학적 유산으로 울었던 기억 때문이다. 테스트도 일부러 두 번을 했고 거기서 또 이틀 지나 병원에 갔다. 생리 예정일이 2주 지난 때를 기다렸다. 정말 임신이라면 6주 정도 됐을 것이다. 정말 임신이라면 아기집을 보거나 운이 좋다면 심장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일찍 가서 아무 것도 못 보고 마음 졸이는 것보다 기다린 후 정확한 결과를 보기를 원했다. 확실할 때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임신이 맞을 거라며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아기집이 보인다고 했다. 심장소리를 들려주셨다. 쿵쾅쿵쾅 힘차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대박! 대박!”만 외쳤다. 남편도 놀랐는지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첫 초음파 사진과 함께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산모수첩을 받았다. 몇 년 동안 간직했던 ‘짹짹이’라는 이름을 뱃속 아이에게 붙여줬다.
<아이에게 배운 것>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병원에 가 몇 백만 원을 들여도 생기지 않던 아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까지 그만둔 후에야 갑자기 우리를 찾아왔다. 사실 그동안 병원비로 나간 5백만 원(정부지원금 제외. 실지출액)에 가까운 돈을 생각하면 아깝다. 왜 하필 나냐고, 나는 이렇게 젊고 건강한데 왜 내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느냐고, 죄인이 된 것처럼 우울하게, 내 마음을 망가뜨려가며 벽을 쌓고 울었던 시간들이 속상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들인 돈과 시간은 아이를 갖기 위한 수업료였고, 나를 위한 수련이었다. 체외수정 첫 시도 때 바로 성공했다면 ‘역시 나야.’하며 오만했을 것이다. 아이의 소중함을 지금처럼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것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건강한 아이가 우리를 찾아오기만을 바랐던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이제는 부모 될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은 건지 아이가 생겼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도 자궁에 배아를 붙일 수는 없었다. 그 어려운 일을 우리 힘으로 해냈다.
사실 지금도 안심되지 않는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내 눈 앞에 있어야 조금 안심할 수 있을까. 갑자기 심장이 멈추면 어떡하지, 손가락이 6개면 어떡하지, 예정일보다 일찍 나오면 어떡하지, 계속 걱정했다. 이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산해보면 남편 일을 돕기 위해 야외 행사에 나갔을 때도, 제주도에 갔을 때도, 촛불집회에 나갔을 때도 짹짹이는 이미 나와 함께였다. 내가 뭘 하든 간에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길 바라며 묵묵히 자신의 몸을 키우고 있었다. 건강한 짹짹이 덕분에 나는 입덧도 거의 없었고, 9개월이 된 지금까지 몸이 부은 적도 없으며, 지금까지도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고 있다.
세상에 많고 많은 부모들 중 가진 것 없는 우리를 찾아온 아이에게 정말 고맙다. 몇 주 전에는 울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엄마는 나한테 좋은 것도 못 해줄 거면서 왜 나를 낳았어?”라고 원망할까봐 겁났다. 다른 부모들처럼 풍족하게는 못 해줘도 아이를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을 항상 생각하며 사랑으로 보듬어주며 아이가 올바른 생각을 갖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본을 보이는 멋진 부모가 되고 싶다. 태어나기 전부터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깨닫게 하는 짹짹이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다.
<또 다른 나에게>
통계에 따르면 가임기 부부 7쌍 중 1쌍이 난임이라고 한다. 난임은 1년 간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난임병원에 다니면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가 이미 있다고 난임에서 완전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누구나 난임이 내 일이 될 수 있다.
남편의 지인 중에는 열 번이 넘는 시도 끝에 아이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아이를 임신하면 다행이다. 난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연들이 정말 많다. 그들이 들인 돈과 시간, 노력은 가늠할 수 없으며 난 그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감히 꺼낼 수 없다. 나는 고생한 것도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의 주변에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난임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우선 기혼자에게는 “아이 언제 가질 계획인가요?”라고 묻지 말자. 관심 표현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아이를 원하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그 사람이 전과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까칠하거나 우울해하더라도 이상하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먼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자.(“누가 문제야? 당신이야, 남편이야?”라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여기 없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이 말을 직접, 한 자리에서 한 사람에게 두 번이나 들었다.) 위로해줘도 좋지만 위로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아이는 언젠가는 꼭 생긴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남편이랑 놀다보면 임신할 거야.”라는 지금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은 신기하게도 정말 맞는 말이다. 나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우리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아이가 찾아온다. 현명한 우리 몸은 당신을 위해 건강하고 좋은 유전자를 고르고 있는 중이다. 아이는 당신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다.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은 절대 당신 잘못이 아니다. 힘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곧 찾아올 좋은 날만 떠올렸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힘든 시기를 함께한 남편에게 정말 고맙다. 내가 울 때마다 짜증낼 때마다 받아주고, 내가 힘내서 걸어갈 수 있게 응원해줘서 짹짹이가 우리를 찾아온 것 같다. 아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행운을 가져 정말 행복하다. 7월을 기다린다. 끝.